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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설명의무' 본래적 취지를 되새기는 최근 법원 판결들

법률칼럼 '설명의무' 본래적 취지를 되새기는 최근 법원 판결들

  •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7.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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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중요한 의료행위를 앞두고 병원은 환자에게 '보호자'가 누구인지 확인을 요청한다. 물론, '보호자'가 없다고 의료행위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병원 측이 '보호자'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은 환자에게 위급한 일이 발생했을 때 환자에 대한 처치를 어찌할지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할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이유는 환자 스스로 자기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근거는 무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이다. 누구든 자기 운명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는데, 잘 결정하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닥친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판례는 의료행위의 전 단계(진찰, 처방, 투약, 검사, 시술, 수술 등등)에서 의사는 환자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따라서 환자가 충분히 이해할 만큼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했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면 의사 측의 설명의무 위반이 문제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분쟁이 발생한 이후 '증명'을 하기 위해 환자에게 침습적인 행위를 할 경우 문서화된 설명동의서를 만들고 환자에게 서명을 받아 설명했다는 사실을 확인받아 놓는 것이다. 

그동안 법원은 침습적 행위에 앞서 미리 인쇄된 종이에 환자로부터 직접 서명을 받는 경우, 주요 부작용에 대해 설명을 했다는 흔적을 남겼다면 비록 수술이나 시술 직전에 받았다 하더라도 설명의무를 다했다는 취지로 인정해왔다.

반면, 아무리 설명을 세세히 잘했어도 동의서에 서명한 사람이 환자 본인이 아니고 보호자인 경우, 환자 자신의 동의를 받지 않았기에 설명의무에 위반된다는 취지로 판시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몇 판례들은 동의서의 형식이나 서명자가 누구인지와 관계없이 실제로 설명이 충분히 이루어졌는지 그 실질을 바탕으로 설명의무를 다했는지 판단하고 있다. 

모 병원 척추센터에서 낙상 환자에게 즉시 수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하여 일단 설명한 후 수술을 시행했다. 그러나 치료를 위해 더욱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였고 병원 측은 수술의 필요성, 발생 가능한 합병증에 대해 환자의 아들에게 우선 설명하고 며칠 후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예정된 수술 당일, 마취 시작 40분 전 병원 의료진은 환자의 배우자에게 환자의 경우 동맥경화가 없는 사람들에 비하여 뇌졸중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사정을 설명하였으나 환자는 수술을 받은 후 뇌경색에 따른 좌측 편마비가 발생하였다.

이 사안에서 법원은 환자가 불과 마취 40분 전에 뇌졸중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고지받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나타날 수 있는 후유증 등 수술에 관한 위험성을 숙고하지 못한 채 수술에 나아갔을 가능성이 있고 환자가 수술에 응할지 선택할 기회를 침해당했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흉부 통증으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가 관상동맥조영술 실시 결과 상당한 협착이 발견되어 경피적 관상동맥중재술을 시행한 사례에서, 비록 시술 시작 전 20~30분 전에 설명이 이루어졌고, 심지어 동의서에 서명한 사람이 환자가 아닌 배우자였음에도 법원은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를 다하였다고 인정하였다. 일

단, 시술이 급한 환자였으므로 시술 전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둘 수 없었고, 응급실에 설치되었던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환자와 배우자가 동석해 있었고 환자는 옷을 갈아입으며 의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즉, 법원은 그 동안 형식적으로 환자 본인이 동의서에 날인했는지 여부에 따라 설명의무 이행 여부를 판단한 것과 달리, 환자가 닥친 상황이 얼마나 응급한지를 고려하여 서명자가 비록 환자 본인이 아니더라도 환자 스스로가 위험을 인지한 상태에서 수술 또는 시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증명되었는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따져 설명의무 이행 여부를 판단한 것이다. 

바쁜 의료현장에서는 의료행위를 하기 위한 전제로 환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고, 환자에게 동의서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보호자를 찾아 서명을 받는 일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하는 본래적 취지를 잊고 형식적으로 서류를 확보하는 행위에 그칠 수도 있다.

설명의 본래적 취지를 강조한 위 법원의 판결들은 환자들에게도 병원측에게도 시사점이 있다. 설사 설명과 동의 과정에서 다소 형식적인 면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환자가 의식이 명료함에도 가족에게 동의서를 받는 등) 병원 측에서 실제 설명이 잘 이루어졌다는 점을 증명하면 설명의무 위반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고, 환자도 비록 동의서에 날인을 했다 하더라도 병원 측이 그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사정을 증명하면 병원 측에 설명의무 위반의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이 달린 의료행위에 앞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의료가 시행되는 현장에서는 발생할지 아닐지도 알 수 없는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마치 행정적 서류작업을 하듯 환자에게 설명한 사실을 증거로 남겨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설명의무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실질적으로 병원 측과 환자가 어떻게 소통하고 의사결정에 이르렀는지를 보다 세심하게 심리할 필요가 있다.

위 두 개의 최근 법원 판결은 자기결정권 존중이라는 설명의무의 본래적 취지에 충실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향후에도 법원이 의료진의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으면서도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장하는 방향으로 판단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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